[자유] 이기길 바랄 수 없었고, 4실점했지만 화를 낼 곳이 없어 더 허탈했던 경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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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남아산을 좋아하지만 가장 자주 가는 경기장이 이순신종합운동장은 아닙니다. 집이 공식적으론 수도권이고 사실적으론 강원도 옆이거든요. 그래서 탄천과 목동 등 수도권 중에서도 너무 서쪽에 치우치지 않은 곳에만 당일치기를 할 수 있습니다. 그렇다 보니 서울 이랜드, 성남FC와의 원정 경기는 가능하면 다 가려고 노력합니다. 저한테는 그게 1년에 2~4번 있는 홈경기일 수도 있죠.
그런데 이번 경기 전에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. 임금체불 소식을 듣고 팀을 응원한다는 게 그냥 응원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. 어쩌면 그게 '어차피 부당노동할 거 좀 잘해봐라'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그래서 어제 밤까지 고민했습니다. 가는 게 맞을까.
지난 주 김포전은 건너뛰었습니다. 무슨 모습을 보든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. 선수들은 득점이 나왔을 때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때 한데 모여 크게 기뻐했습니다. 선수단이 원하는 건 바깥의 잡음이 심각해도 팀다운 모습을 보이고 함성으로 인정받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.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토요일 밤에 경기장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.
아쉽지만 바라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. 지난 주 중위권 상대팀의 페널티킥 실축과 전반전 퇴장이라는 호재를 맞고 1:0으로 간신히 이겼던 상황에서 승점을 보면 상위권이나 마찬가지인 팀을 만나는 건 결과가 어느 정도 보이는 일이긴 했습니다. 다 알지만 경기장으로 간 건 경기를 뛸 최소한이자 마지막 이유를 꺼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프로다움이란 뭘까요? 같이 간 지인은 '저런 상황에서도 프로 마인드를 갖추고 있으니까 경기를 뛴 거다. 대단한 거다."라고 했지만, 그리고 그 말에 딱히 반대하지는 않지만 저는 프로란 결국 벌어먹고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. 빌어먹을, 그 벌어먹는 게 안 되는데, 프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데 경기장에 나온 선수들에게 결과를 바라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비판하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. 그래서 이 경기는 제가 결과를 바라지 않고 간 최초의 경기입니다.
두 달 전 탄천에서 성남의 두 번째 골을 허용하자마자 세 번째 골까지 내리 들어갈 때, 바로 다음 경기 수원전에서 같은 모습이 반복될 때 저는 화를 냈습니다. 선수단 전체에게 싫은 소리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. 오늘 경기는 4실점입니다. 하지만 경기장에서도 지금도 저는 그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.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라운드에 연봉과 생활 영위를 목적으로 계약해놓고 계속 나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. 그들은 이미 웬만한 프로리그의 그 어떤 선수도 할 수 없는 일을 오로지 골대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고 있으니까요.
경기가 끝나고 지인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. "왜 경기장에 간 걸까? 뭘 얻고 싶었던 걸까?"
결과를 바라지 않고 승리로 나오는 행복을 얻고 싶지 않은 채, 축구장에 가는 일반적인 이유가 전부 잘린 채 간 경기장은 좀 허망했습니다. 실점할 때마다 화가 나진 않았지만 그때 화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이, 실점하고 대패했음에도 화를 내는 게 부당하다는 명확한 사실이 어색하고 기가 차서 다른 방향으로 힘든 감정이 쌓였습니다.
집에는 11시가 넘어 돌아왔습니다. 내일 아침이 되면 2도가 될, 그래서 이 팀의 모든 것처럼 급격히 떨어져가는 기온을 뚫고 30분 정도를 걸으니 그 시간이었습니다.
저는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.
"경기장에 왜 간 걸까? 이기는 것도 바라지 않고 지면 화를 내지도 않으면서,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서."
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 너무 싫습니다.
+) 대가 없이 일을 하는 게 얼마나 분통터지는 건지 모를 것도 아니면서(저는 임금체불 경험자입니다), 그라운드에서 모든 게 정상적이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인 걸 알면서 인사를 오니 야유하는 사람들도 윗줄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싫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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